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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검정고시/부평검정고시/세종검정고시] 강화도로 떠나요!!

새벽연필 2013. 8. 29. 17:06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우리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섬 강화도를 답사해 볼까요? ^_^

 

 

강화도는 서울 바로 옆에 있는 큰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큽니다. 제주도가 가장 크고, 거제도, 진도 다음이 강화도인데요. 그런데 강화도는 한강 하구에 있고, 고려의 수도인 개성, 조선의 수도인 한양과 가까웠기 때문에 위기 때마다 굵직굵직한 사건이 참 많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색깔을 따라 강화도의 역사를 탐방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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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 - 빨간색 문화재
1. 고인돌(청동기) : 강화도에는 고인돌이 참 많습니다. 남한에서는 보기 드문 거대한 탁자식 고인돌도 있는데요. 가장 유명한 곳은 고인돌 공원입니다. 5월에는 고인돌 축제도 열려요.
2. 참성대(고조선) : 마니산에 있으며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쌓은 제단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계속 고쳐 쌓았기 때문에 본래의 모습은 찾기 힘들지만, 자연석으로 둥글게 쌓은 하단과 네모 반듯하게 쌓은 상단으로 구성된 제단이 하늘과 땅을 상징한다고 해서 지금도 해마다 개천절에 제천 행사가 열리고 있으며, 전국 체전의 성화는 이곳에서 태양열을 이용해 붙이고 있다고 합니다.
3. 삼랑산성 : 정족산성이라고도 하고 단군의 세 아들이 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있어 삼랑성이라 부른대.

삼국시대 - 노란색 문화재야

1. 전등사 : 삼랑성 내에 아늑히 자리잡고 있는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11년(372년)에 아도 화상이 처음 창건하고 진종사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 후 고려 충렬왕비 정화궁주가 이 절에 귀한 옥등을 시주했다 해서 ‘전할 전’ 자와 ‘등불 등’ 자를 써서 전등사로 개명했다고 합니다.
2. 보문사 : 신라 선덕왕 때 창건한 절로 창건 전설이 재미있습니다. 한 어부가 그물에 걸린 사람 모양의 돌 22개를 버렸는데, 꿈에 그것이 불상이라는 신선의 질책을 듣자 다시 돌들을 건져 산 속으로 옮기던 중 지금의 보문사 석굴 앞에서 돌이 무거워져 더 옮길 수 없게 되어 석굴에 안치했다고 합니다. 보문사에 가면 석굴을 꼭 들여다 보세요.

고려 시대 - 파란색 문화재

1. 강화 외성 : 고려가 몽골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도읍을 옮기면서 1233년부터 1270년까지 강화 외성을 쌓았는데, 흙과 돌을 섞어서 쌓은 성으로 바닷길을 따라 길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2. 고려 궁궐터 :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고종 19년(1232년)에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1234년에 세운 궁궐과 관아 건물입니다.
3. 선원사 : 팔만대장경을 판각했다는 절입니다. 고려가 몽골과 싸울 때 최우가 호국 사찰로 창건했고, 대장도감(大藏都監)을 설치해 고려대장경 목판을 만들었습니다.

조선 - 연두색 문화재
1. 사고 : 사고란, 조선 시대 역사책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처음엔 마니산에 사고를 설치했다가 임진왜란때 파괴된 후에는 전등사로 옮겨 서적을 보관했습니다. 그 후 전등사는 사고를 지키는 사찰로서 왕실의 보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명부전 맞은편 왼쪽 언덕을 약 100m 오르면 조선 왕실의 실록을 보관했던 정족산 사고터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근대 - 초록색 문화재
1. 광성보 : 광해군 이후 강화 외성을 다시 쌓으며 대포를 설치한 해군 요충지인 광성보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여기 소속된 용두돈은 좁은 강화 해협에 용머리처럼 쑥 내민 암반 위에 설치된 천연적인 교두보로, 작은 보트 한 대도 그냥 통과할 수 없는 절묘한 지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적을 통과시키지 않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한 곳입니다.
2. 초지진 :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조선 효종 때 구축한 요새. 신미양요 당시 미군이 침략해 왔을 때 전력의 열세로 패한 후 점령당해 군사 시설물이 모두 파괴되었지만 끈질긴 공격으로 되찾았습니다. 일본이 조선을 힘으로 개항시키기 위해서 파견했던 운요호를 공격할 때에도 여기가 중심이 되었어요. 그 뒤 허물어진 초지진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강화 역사관 - 검은색 문화재
1. 특징 : 선사 시대부터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강화의 역사를 주제로 한 강화 역사관은 시원한 파도가 넘실대는 갑곶돈대 옆에 있습니다. 강화의 변천사를 알기 쉽게 전시한 역사관 내부는 물론이고 야외 마당에도 배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말 강화도에 유독 외적 침입이 많았던 이유는 멀까요???   

첫째, 조수 간만의 차가 큰 황해안에서 큰 배가 드나들기 쉬운 항구가 부족하여 강화도가 근대의 창구 역할을 했습니다. 후에 인천항이 개항되고 나서는 강화도의 역할이 다소 줄어들었습니다

둘째, 조선은 수로를 통해서 물자를 유통했기 때문에 한강 입구를 막으면 경제적 타격이 컸습니다. 그래서 외적은 강화도에 머무르며 한강 하구를 통제하고 수도를 위협했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