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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안검정고시/세종검정고시] 11.고대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역사의 라이벌 1부 성왕 VS 진흥와편. 본문

대검 자료실(고등)

[주안검정고시/세종검정고시] 11.고대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역사의 라이벌 1부 성왕 VS 진흥와편.

새벽연필 2014. 4. 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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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지난 시간까지 신라의 기틀을 잡았던 지증왕과 법흥왕에 대해 다뤄보았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신라의 전성기를 연 진흥왕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는데요,

 

그런데 진흥왕을 이야기 하려면 꼭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지요.

 

그것은 바로 백제의 중흥을 노렸으나 진흥왕의 뒤통수 치기로 인해 좌절을 맛본 비운의 사나이 성왕입니다.

 

먼저 성왕에 대해 설명해볼께요.

 

당시 백제는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밀려 수도 한성을 털리고, 왕까지 전사하는 등 뼈아픈 타격을 입었답니다.

 

고구려에 쫓긴 백제는 황급하게 웅진(오늘날의 공주)에 다시 수도를 정하게 되지요.

 

그러나 웅진은 방어에 유리하긴 하지만 여러가지 여건이 수도에 적합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어느정도 사태가 수습되고 맨붕의 시대가 끝날 즈음, 백제의 중흥을 도모할 성왕이 등장합니다!

 

먼저 성왕은 수도를 웅진에서 사비(오늘날의 부여)로 옮깁니다.

 

왜냐하면 여러가지 여건이 사비가 좀 더 번영과 발전을 도모하기 괜찮은 곳이었고,

 

무엇보다도 영토확장을 위해 공세적인 입장을 취하기가 좋은 곳이었지요.

 

그리고 국호를 '남부여'로 개칭하는데, 이는 백제의 뿌리가 부여에 있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었지요!

 

그 후 성왕은 신라와 동맹을 맺어 동시에 북으로 밀고 올라갑니다.

 

그렇게 해서 고구려에게 빼앗겼던 자신들의 옛 터전인 한성을 되찾게 되지요!

 

이렇게 백제의 중흥을 노렸던 성왕... 그러나 그의 노력은 진흥왕의 배신으로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인천검정고시/주안검정고시/구월검정고시/만수동검정고시/동인천검정고시]

 

자, 그럼 신라의 진흥왕은 왜 갑자기 배신을 하게 된걸까요?

 

위 지도를 보면 어느정도 답이 나옵니다.

 

백제가 탈환한 한강일대는 매우 비옥하고 풍요로운 지역인데 비해, 신라가 차지한 강원도와 함경도는 상당히 척박한 지역이지요.

 

노력한 것에 비해 결과가 보잘것 없다는 것을 안 진흥왕은 당연히 배가 아팠고,

 

급기여 백제의 뒤통수를 쳐서 한강 일대를 빼앗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백제 중흥을 노리던 성왕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고,

 

신라는 드디어 서해로 진출할 수 있는 직항로를 얻음으로 인해 전성시대를 열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신라의 배신에 화가난 성왕은 보복전쟁을 벌였지만 결국 신라 관산성 앞에서 전사함으로써 성왕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 후 진흥왕은 한강 유역을 정복한 것에 멈추지 않고, 가야연맹을 완전히 복속하여 병합하게 됩니다.

 

이렇게 영토를 확장한 진흥왕, 당연히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고 싶었겠죠?

 

그래서 진흥왕은 비석덕후라는 별명이 생길정도로 많은 기념비를 세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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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이 세운 비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단양-적성비

북한산/창녕/마운령/황초령-순수비

 

즉, 적성비와 순수비 둘로 나눌수 있는데, 통상 적성비는 진흥왕이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그리고 순수비는 영토확장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중 북한산 순수비는 너무 유명해서 시험에 자주 출제되니 꼭 기억해 둬야겠지요?^^

 

그 밖에도 진흥왕이 한 업적으로는 후에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는데 중추 역할을 하게 된 화랑도를 정비했다는 것 정도가 되겠습니다~

 

 

[인천검정고시/주안검정고시/구월검정고시/만수동검정고시/동인천검정고시]

 

자, 그럼 본격적으로 문제풀이를 가 볼까요? 위 문제는 2011년 2회차에 출제된 문제입니다.

 

1번 성왕 : 정답이죠! 성왕은 국호를 남부여로 개칭하고 백제의 중흥을 도모하기 위해 신라와 동맹을 맺어 한강 유

              역을 일시적으로 장악했다고 했습니다.

 

2번 무왕 : 무왕은 백제 말기 왕이 되자마자 신라의 영토를 여러차례 공략한 왕입니다. 그러나 정답은 아닙니다.

 

3번 침류왕 : 침류왕은 전기 백제에서 처음으로 불교를 공인한 왕입니다. 역시 정답이 아닙니다.

 

4번 동성왕 : 동성왕은 성왕이전 신라와 결혼동맹을 추진했던 왕입니다. 정답이 아닙니다.

 

 

[인천검정고시/주안검정고시/구월검정고시/만수동검정고시/동인천검정고시]

 

위 문제는 2012년도 2회차에 출제된 문제입니다.

 

1번 내물왕 : 내물은 사실 왕이 아니라 마립간의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광개토대왕편에서 설명한바와 같이

                 신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구려에 도움을 요청했었지요. 정답이 아닙니다.

 

2번 지증왕 : 지증왕은 지증왕편에서 다뤘다시피 최초로 신라에서 왕이란 호칭을 쓴 사람이죠? 정답이 아닙니다.

 

3번 진흥왕 : 네, 진흥왕은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개편하고 한강유역을 차지한 후 각지에 순수비를 세웠지요. 바

                  로 진흥왕이 정답입니다.

 

4번 문무왕 : 문무왕은 신라의 삼국통일을 완성한 왕이지요. 정답이 아닙니다.

 

자, 이렇게 해서 2개의 문제를 풀어봤습니다.

 

역사의 라이벌이었던 성왕과 진흥왕은 재밌게도 시험문제에서도 연달아 출제되었네요^^

 

가히 진정한 라이벌이라고 할만하군요!

 

이렇게 해서 오늘 시간에는 백제의 중흥을 노렸던 성왕과 신라의 전성기를 연 진흥왕에 대해 다뤄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고대시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불교에 대해 한번 다뤄보도록 할께요~